두 번째 실패한 게임, 그리고 숨겨진 보석
2011년, 마흔을 앞두고 있는 연쇄 창업가 스튜어트 버터필드(Stewart Butterfield)는 다시 한번 게임 회사를 창업했다. 새로 설립한 회사의 이름은 타이니 스펙(Tiny Speck). 그의 2번째 게임회사에서 만든 작품은 "몬티 파이썬과 닥터 수스를 산성 환각제와 섞은 듯한" 독특한 온라인 게임 글리치(Glitch)였다.
첫 번째 게임 회사는 200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청년이던 버터필드는 "게임 네버엔딩(Game Neverending)"이라는 MMORPG를 개발했지만 실패했고, 그 과정에서 만든 사진 공유 기능이 플리커(Flickr)가 되어 2005년 야후에 인수되었다.
글리치의 운명도 ‘게임 네버엔딩’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2011년 가을 출시된 글리치는, 팜빌(FarmVille)이나 시티빌(CityVille) 같은 단순한 브라우저 게임들에 밀려 인기를 얻지 못했다.
플리커가 그랬던 것처럼, 버터필드와 그의 팀은 게임 개발 과정에서 만든 다른 요소에 주목했다. 당시 샌프란시스코, 밴쿠버, 뉴욕 등 여러 도시에 흩어진 개발자들이 협업하기 위해 내부 커뮤니케이션 도구를 만들었는데, 이 도구가 기존의 IRC(Internet Relay Chat)보다 훨씬 강력했기 때문이다.
2012년 말부터 2013년 초, 버터필드는 투자자들에게 충격적인 발표를 했다. 게임 회사를 접고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회사로 전환하겠다며. 타이니 스펙은 이제 게임 회사가 아닌, 슬랙(Slack)으로 알려질 메시징 서비스 제공 회사가 되고자 했다. 그렇게 2013년 8월, 슬랙은 공식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창조적 모방의 적용: IRC와 이메일의 장점을 하나로
슬랙의 핵심은 기존 커뮤니케이션 도구들의 창조적 모방과 재해석이었다. 첫 번째로, 기존 IRC의 실시간 채팅 기능을 계승했다. 1980년대 후반과 1990년대 초반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IRC는 개발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널리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IRC에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로그아웃하면 대화 내용이 사라졌고,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이 불가능했다.
슬랙은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완전한 비동기 커뮤니케이션을 지원하여, 사용자가 로그아웃해도 메시지가 저장되고 나중에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마치 메일을 보내는 것처럼. 동시에 이메일의 단점인 스레드 관리의 어려움과 실시간성 부족 문제는 IRC의 채널 기반 구조와 즉각성으로 보완하고자 했다.
둘째, 검색 가능한 메시지 아카이브 기능을 추가했다. 모든 대화 내용이 저장되었기에 강력한 검색 기능을 통해 언제든지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은 기업 내부의 지식 관리 도구로서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셋째, 다양한 제3자 도구들과의 연동을 제공했다. GitHub, Google Drive, Trello 등 개발자와 비즈니스 팀이 사용하는 수많은 도구들을 슬랙에 연결할 수 있었다.
넷째, 채널 기반 구조를 통해 팀, 프로젝트, 주제별로 대화를 조직화할 수 있게 했다. IRC의 채널 개념을 계승하면서도, 더 직관적이고 관리하기 쉬운 UI/UX로 재해석해낸 것이다.
마지막으로, 프리미엄(free-mium)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했는데, 기본 기능은 무료로 제공하되, 메시지 히스토리 확장, 고급 보안 기능, 더 많은 통합 등을 원하는 기업은 유료 플랜을 선택하도록 했다.
결과와 성과: 277억 달러의 가치 창출
슬랙의 성장은 가히 놀라웠다. 2013년 8월 출시 후 첫 해에만 11억 2천만 달러. 2019년 기준으로 일일 활성 사용자 수는 1,200만 명을 넘어섰고, 월간 활성 사용자는 1,800만 명에 달다. 전 세계 75만 개 이상의 기업이 슬랙을 사용하고 있었다.
2019년 6월, 슬랙은 뉴욕증권거래소에 직접 상장했다. 전통적인 IPO 대신 직접 상장을 선택한 것은 스포티파이(Spotify)에 이어 두 번째 사례였다. 상장 첫날 주가는 38.50달러로 마감되었고, 기업 가치는 약 195억 달러로 평가되었다.
2020년 12월, 세일즈포스(Salesforce)는 슬랙을 277억 달러(약 31조 원)에 인수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소프트웨어 업계 역사상 가장 큰 인수 중 하나였으며, 마이크로소프트가 링크드인을 262억 달러에 인수한 것을 넘어서는 규모였다.
2022년 기준, 슬랙의 연간 반복 매출(ARR)은 11억 달러를 넘어섰다. 유료 사용자들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특히 연간 계약 금액이 10만 달러 이상인 엔터프라이즈 고객들이 전체 매출의 40%를 차지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원격 근무의 확산은 슬랙의 성장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소기업을 위한 교훈: 기존 도구를 어떻게 재해석할 것인가
첫째, 자신이 매일 사용하는 도구의 불편함에 주목하라. 슬랙은 버터필드와 그의 팀이 실제로 겪었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만든 도구였다. "개밥 먹기(dogfooding)" 철학, 즉 자신의 제품을 직접 사용하면서 개선하는 접근법이 성공의 핵심이었다. 자신의 일상 업무에서 반복적으로 느끼는 불편함이 무엇인지 기록하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고민해보라.
둘째, 기존 솔루션들의 장점을 결합하고 단점을 보완하세요. 슬랙은 IRC, 이메일, 협업 도구들의 장점을 하나로 모았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것을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이미 존재하는 여러 도구들의 좋은 부분을 가져와 하나의 일관된 경험으로 통합하는 것만으로도 큰 가치를 만들 수 있습니다. 고객들이 현재 사용 중인 2-3가지 도구를 조사하고, 그것들 사이를 오가며 느끼는 불편함을 제거하는 데 집중하세요.
셋째, 실패한 프로젝트에서 가치 있는 부산물을 발견하세요. 버터필드는 두 번이나 게임 실패를 경험했지만, 그 과정에서 만든 도구들(플리커와 슬랙)이 훨씬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여러분의 실패한 프로젝트나 진행 중인 프로젝트를 돌아보세요. 본래 목적과 다르게 활용되고 있는 기능이나 도구가 있나요? 팀 내부에서 만든 임시방편 솔루션 중 다른 사람들도 필요로 할 만한 것이 있나요?
넷째, 프리미엄 모델로 진입 장벽을 낮추세요. 슬랙은 무료 버전으로 사용자들이 쉽게 시작할 수 있게 하고, 가치를 경험한 후 자연스럽게 유료 고객으로 전환되도록 했습니다. 소기업의 경우 초기 마케팅 예산이 부족하므로, 고객이 스스로 가치를 발견하고 구매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프리미엄 모델이 효과적입니다. 어떤 기능을 무료로 제공하고 어떤 기능을 유료화할지 신중하게 설계하세요.
다섯째, 통합(integration)을 통해 생태계를 구축하세요. 슬랙의 강력한 경쟁력 중 하나는 수천 개의 제3자 앱과의 연동이었습니다. 소기업이라면 처음부터 모든 기능을 직접 만들려고 하지 마세요. 대신 고객들이 이미 사용 중인 도구들과 쉽게 연결될 수 있도록 API나 연동 기능을 제공하세요. 이것은 네트워크 효과를 만들어내고 고객의 이탈을 방지합니다.
여섯째,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세요. IRC는 강력했지만 개발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어려웠습니다. 슬랙은 같은 기능을 훨씬 직관적이고 아름다운 인터페이스로 제공했습니다.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과 사용하기 쉬운 것은 다릅니다. 여러분의 제품을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 보여주고, 설명 없이 사용할 수 있는지 테스트해보세요.
출처
- Tech Crunch - The Slack origin story
- Salesforce Press Release - Salesforce Completes Acquisition of Slack
- CNBC - Salesforce buys Slack for $27.7 billion
- M Accelerator - How Slack Achieved $1.12B in Its First Year
- 기계인간 John Grib - 슬랙 창업 이야기
- Building Slack - The death of Glitch, the birth of Slack
- FourWeekMBA - Slack Business Model & Revenue Model
- Masters of Scale - The big pivot, with Stewart Butterfield

